전설적인 프랑스 정보장교 Paul Aussaresses에 대해 ARABOZA

김태훈 0 30

프랑스는 나치독일에게 당한 패배, 알제리아나 베트남 등에서의 패전 때문에 전쟁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프랑스군은 전투력으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군이다.

특히 프랑스는 나치독일에게 점령당한 역사 때문인지 대외정책에서 강경파가 득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프랑스는 냉전시대 당시, 동독과 더불어 고문수출국 양대산맥이었다. 동독은 공산권, 아랍권에 고문 기술을 수출했고 프랑스는 우익정권에 고문 기술을 수출했다. 또 그만큼 고문도 자주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특이한 인물은 폴 오사레스(Paul Aussaresses)라는 인물이다.


1918년 태어난 그는 1941년 때 알제리아에서 근무하던 중에 프랑스 국내 레지스탕스와 임시정부를 잇는 첩보원으로 활약했다. 이때 첩보원으로서 그는 나치의 고문에 대처하는 훈련을 받았다. 프랑스군이 실시했던 그 훈련의 내용은 지금도 격언으로서 전해진다. "고문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말하게 할 것이고 너는 결국 말할 것이다. 그저 24시간만 버텨라. 그러면 동료들은 도망갈 수 있다." 다행히 오사레스는 

나치독일과의 대결은 프랑스 정부와 군부로 하여금, "악과 싸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이라는 사상을 불어넣었다. 나치가 패망해도 이 사상은 프랑스 군부에 그대로 전해져왔다. 프랑스는 먼저 식민지에 대한 지배를 다시 강화하고자 했다. 첩보와 방첩을 모두 경험한 인재 오사레스는 베트남으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비밀경찰 조직과 운영에 큰 역량을 발휘했다.

하지만 (유시민이가 기쁨으로 발광했던)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궤멸적인 패배를 입었고 결국 1954년에 철수하게 되었다. 정보장교 오사레스도 베트남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오사레스는 프랑스가 아니라 알제리아로 떠났다. 알제리아민족해방전선이라는 무장단체가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며 테러를 자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첩보에 대해서는 프랑스 군부 내에서 1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오사레스는 먼저 알제리아인들을 매수 및 포섭하여 지하정보망을 만들었다. 그 지하정보망을 통해 마을에 등장한 낯선 사람은 누구인지, 최근 떠도는 소문은 없는지 등을 체크했다. 그 와중에 오사레스 자신이 지내고 있던 알제리아의 소도시 필립빌에서 테러가 자행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오사레스는 이를 보고했으나 상부에서는 무시했고 결국 오사레스의 판단이 옳았음이 드러났다. 이 일로 오사레스를 주목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알제리 주둔군 사령관 마수(Jacque Massu) 준장이었다.


마수 준장 또한 나치와의 전쟁을 경험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오사레스를 발탁하여 첩보망을 확대하고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이 과정에서 오사레스는 고문을 마음껏 해댔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들과 내통한 사람들은 암살했다. 프랑스와 알제리 무슬림들의 대결은 최악의 살륙전으로 치달았다. 한편 그 와중에 오사레스는 1961년 알제리에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오사레스를 비롯한 알제리전에 참여한 10명의 장교들은 미국으로 떠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문 휴가였지만 실제로는 고문 기술의 전수를 하러 떠난 것이었다. CIA는 알제리에서의 프랑스군이 테러리스트들의 첩보망을 무너뜨린 활약을 보고 그것을 배우고자 했다. 그 방첩 기술의 전수 중에 고문기술의 전수도 있었다.

그리고 오사레스의 방침에 따라 실시된 것이 베트남에서 CIA가 실행한 피닉스 작전이다. 스파이로 의심되는 인물을 체포하고 정보를 캐내어 호치민에 우호적인 인물들을 찾아내고, 필요에 따라 암살하는 극단적인 작전이었다.

오사레스는 냉전시대 어둠의 세계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강사였다. 1970년대에는 브라질로 출장을 떠나 브라질 군사정권에 자신의 고문 기술을 전수했다. 브라질에 거주하면서 오사레스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정보장교들에게도 고문 기술을 전수했다. 







남미에서 돌아온 후, 오사레스는 정식으로 퇴역했다. 그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존경받은 군인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2001년, 그는 9.11 테러를 겪어 무슬림 테러리스트에 대한 공포로 뒤숭숭하던 미국에 자신의 경험담을 쓴 Battle of Casbah(https://www.amazon.com/Battle-Casbah-Terrorism-Counterterrorism-1955-1957/dp/1929631308)라는 책을 출판했다. 내용인즉,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고문이 필요악이라고 주장한 책이며 자신이 고문을 사용하여 테러리스트들의 시도를 막은 경험담이다. 하지만 본국 프랑스에서는 뒤늦은 비판 여론이 일었고 결국 시라크 대통령은 오사레스에게 수여한 명예와 훈장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오사레스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테러리스트들에게 고문을 쓰지 않는다면 그들을 제때 막을 수 없다는 지론을 굽히지 않았다.

오사레스는 2013년 죽었다. 95세로 엄청나게 장수를 누렸다. 그가 애꾸인 이유는 눈병이 악화되어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결국 거세지는 민중저항 때문에 알제리에서 철수했다. 미국도 베트남에서도 철수했다. 오사레스가 고문 기술을 전수한 남미 국가들은 처음에는 정권을 굳히는가 싶었으나 결국 정권을 탈취당했고 고문 사용으로 도덕성이 몰락했다. 미국에서는 테러리스트가 상대라면 고문을 사용해도 된다는 주장과 고문의 사용은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문의 사용을 지지한다고 밝혔으나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가 고문의 사용을 반대하니 그의 말을 따르겠다는 답변을 한 바 있다.






사실 프랑스는 겉으로는 똘레랑스를 주장하지만 동시에 무슬림들의 범법행위에 대해 대단히 살벌한 폭력으로 맞섰던 나라이다.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하지 못하는 만큼 사법권력이 폭력적으로 대처해온 것이다. 무슬림들이 입국하기도 쉽고 혜택도 많은 프랑스를 내버려두고 굳이 한국으로 오는 이유는 간단히 말하면 한국의 공권력이 물러터졌기 때문이다. 



180629_OTTL.jpg

온카

온라인 카지노 - 온카

0 Comments
제목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강원랜드 사고팔고 강원랜드 자유토크 강원랜드 FUN FUN 강원랜드 기타게임 강원랜드 같이갈래 강원랜드 후기 강원랜드 사회이슈 강원랜드 노하우 강원랜드 질문/답변 강원랜드 연재 강원랜드 단도얘기 강원랜드 해외통신